고택안내

1.애국지사의 집

의병활동 위해 직접 무기 구하고 실탄까지 만든 后松 선생

건축미가 아름답기도 하지만 후송당은 어느 고택에서 볼 수 없는 몇 가지 내밀한 장치들로 스스로의 정체성을 뚜렷하게 드러내고 있다. 눈에 잘 띄진 않지만 가장 두드러진 것은 안채 부엌문 옆에 낸 태극 문양의 구멍이다. 그런 구멍을 태극(太極)의 모양으로 뚫어놓은 것은 후송당을 지은 후송 조용정(趙鏞正) 선생의 애국정신이 건축에 고스란히 반영된 결과이다. 1907년 정미(丁未) 의병 당시 청송의 의병부대인 산남창의진(山南倡義陣)에 참여하여 대구로 나가 무기를 구해왔고, 집에서 직접 실탄을 만들어 의병들에게 나눠주는 등 구한말 망해가는 나라를 구하고자 역동적인 의병활동을 펼쳤다. 


고종 때 중추원의관을 지낸 일송 선생은 19세기 후반 명성황후 시해 등 일본인들의 국권 침탈이 심화되자 의병부대에 합류해 안동 관찰부 점령과 상주 함창 전투에 참여하는 등 적극적인 항일운동에 나섰고, 의병을 해산하라는 고종 임금의 포고문에 따라 어쩔 수 없이 향리로 돌아와 여생을 일송정에서 보냈다. 독립운동 공적으로 포상과 함께 대통령 표창도 받았다.

2. 代醫家遺物室(오대의가유물실)

사랑채의 안마당 쪽 측면에 '五代醫家遺物室(오대의가유물실)' 이라는 현판이 붙어있다. 5대째 이어지는 의사 집안의 유물을 보관하는 방이라는 뜻이다.

3. 효자각

효자각은 일송 조규명 애국지사의 효행비로서 명암 이태일 선생께서 비문을 지었으며, 1895년 항일운동 당시 척암 김도하 안동 의병 대장과의 활동 내용이 기재되어있고 국가보훈처에서 인정하여 항일운동 유공자로 선정하였다. 또한 효자각 앞에는 소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4. 후송당 일송정

일송정 후송당은 바로 뒤편 산 위에 있는 일송정은 2층 누각이다. 후송이 아버지 일송을 위해 지은 정자로 누각에 오르면 후송당 앞의 문전 옥탑은 물론 멀리 길안천과 현동면 일대가 한눈에 들어온다. 기역자 툇마루를 앞에 배치하고 남쪽으로 2칸짜리 장방과 1칸짜리 장방 1개와 중방이 배치되어 있다. 건물 주변에 낮은 담장을 둘러서 전경을 조망하는데 방해를 받지 않는다.

5. 후송당민속유물실

옛날에는 가축들을 사람 못지않게 소중히 여겼고, 특히 경북 북부지방은 날씨가 추운 까닭에 외양간을 집안에 들여 놓았다. 방앗간에는 이제는 쓰이지 않는 디딜방아가 옛 모습 그대로 놓여져 있다.

후송당의 민속 유물실을 보면 청송 만석꾼 조부자의 권위를 알 수 있다. 1945년 조국 광복과 동시 후송(后松)은 현동 고등공민학교를 설립하여 이곳을 임시 교실로 사용하다가 1974년 현동 중학교 설립하였다. 당시 후송의 아들인 계송 조한성이 후송당의 부동산 일부를 학교설립 법인으로 하여 주었고 1980년에 후송의 손자인 조창래가 부동산 전부를 학교에 기부하였다.